테르모필레 전투 Battle of Thermopylae(from wikipedia) - 2.전투
페르시아군의 도착
페르시아군이 전투현장에 도착하자, 그리스 군대는 회의를 열었다. 몇몇의 펠로포네스인들은 지협으로 철수하여 펠로포네스로의 통로를 저지하자고 건의했다. 그들은 페르시아가 그들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테네를 거쳐가야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근처에 자리잡은 포키스인과 로크리스인들은 분노하여 테르모필레를 방어하고 더 많은 원조를 보내야한다고 주장했다. 레오니다스와 스파르타 인들은 그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는 동안 페르시아군은 통로에 들어와 정찰을 위해 기마수색병을 보냈다. 그리스인들은 그가 초소로 들어와 그들을 조사하고 떠나도록 놔두었다. 수색병이 크세르크세스에게 그리스군의 규모와 스파르타인들이 미용체조에 빠져있고 그들의 긴머리를 빗질하고 있었던 사실을 보고하자 그는 그 보고가 우스꽝스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파르타에서 추방된 왕의 고문인 데마라투스를 찾아, 크세르크세스는 스파르타인들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으며 그 전에 그들의 머리를 장식하는 것은 그들의 관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추방자는 그들을 "그리스에서 가장 용감한 자들"이라고 불렀으며 위대한 왕에게 그들은 그 협곡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세르크세스는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또 다른 보고에 따라 그는 그리스 군대로 사절을 보냈다. 첫째로 그는 레오니다스에게 전 그리스의 통치권을 제공함을 전제로 자신에게 합류할 것을 요구했다. 레오니다스는 "만약 무엇이 훌륭한 삶인지 안다면 타국에 대한 욕심을 끊어야할 것이다. 나는 내 동포 위에 군림하는 것보다 그리스를 위해 죽는 것이 더 좋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크세르크세스는 더욱 강력하게 그들의 무기를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레오니다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와서 직접 가지고 가시게"(Come take them)라는 뜻이다.(300에서는 "Come and get them."이라는 대사였다.) 이 문구는 이후 많은 장군이나 정치가들에 의해 전투없이는 항복하지 않겠다는 군대나 국가의 결단을 표현하기 위해 많이 사용되었다. (Taken by the Greek First Army Corps as their emblem[19]).
그들의 극단적으로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사기는 높았다. 호로도투스는 스파르타의 병사인 디에네케스가 페르시아의 화살수가 "해를 가릴만큼"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특유의 의미심장한 산문체로 "뭐 잘되었네, 그럼 그늘에서 싸우지."라고 말했다고 적는다.(Taken by the Greek 20th Armored Division as their motto[20])
크세르크세스는 4일동안 그리스군이 흩어지기를 기다렸다. 5일째가 되는 날 그리스인들을 포로로 잡아 그 앞에 무릎꿇리게 하기 위해 메디아 인과 Cissians을 10년전의 마라톤 전투로 죽은 자들의 친척들과 함께 보냈다. 테시아스에 따르면, 아르타파누스가 이끈 첫 부대의 수는 10000명이라고 한다. 그들은 스파르타가 겨우 2~3명의 사망자를 내는 동안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다.
정면돌파의 실패
크세르크세스는 Diodorus Siculus가 제안하는 대로 가장 최근에서야 페르시아에 의해 정복된 메디아인을 내보냈는데 그것은 황제가 그들이 전투의 맹공을 떠맡길 원했기 때문이다.(방패막이하란 소린가?)
메디아인들은 곧 그들이 정면돌파에 들어갈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스인들으 최근에 다시 지어진 Phocian Wall의 양편에서 야영하고 있었다. 그 보호된 벽은 그리스군이 그것을 전투를 위한 기준선으로 설정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나, 그들은 그 선의 앞편에서 싸웠다.(24)
전법의 자세한 부분은 다소 불분명하다. 그리스군은 방패로 겹친 벽 모양의 '방진'을 전개하고 창끝을 층층이 세워 벽의 모든 폭을 메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헤로도투스는 각 나라의 부대가 함께 모여있었다고 전한다.활과 짧은 창, 가벼운 방어구로 무장한 페르시아인들은 우세한 방어구, 무기류로 무장하고 잘 훈련된 그리스의 방진을 깨부술 수 없었다. 글로츠는 한명의 그리스 기갑보병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세명의 페르시아병사가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군이 전적으로 접근대형으로 싸우지 않았다는 몇몇 증거가 있기도 하다. 그들은 무질서하게 후퇴하는 척 하면서 메디아인들을 유인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뒤쫓전 그들을 공격하는 속임수를 사용했다. 이 방법으로 그들은 많은 수의 메데스인들을 죽였고, 크세르크세스가 그 전투를 보는 동안 세번이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헤로도투스와 디오도루스에 의하면 적에 대해 어느정도 가늠한 황제는 그가 가진 최고의 군대, 10000명의 우수군단인 임모탈로 두번째 돌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테시아스에 따르면 임모탈은 둘째 날까지 공격하지 않았다고 한다. 테시아스는 계속 공격하도록 지휘자에 의해 채찍질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협곡을 여는데 실패한 첫 10000명의 부대가 패배한 후 크세르크세스가 그의 군대 중 또 다른 20000명의 군사를 보냈다고 이야기한다.(22) 한편 레오니다스는 최전선에 신규의 부대를 두기 위한 여러 도시의 기갑보병의 교체 시스템을 준비했다.(내멋대로 해석..;) 그러나 막상 전투중에는 그 부대들이 교체될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한정된 공간에서 오직 몇몇의 수만이 그리스군의 전열에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임모탈도 메디아인에 비해 나을 것이 없었다. 크세르크세스는 그들을 모두 철수시킬 수 밖에 없었다. 전투의 첫째날은 그렇게 종료되었다.(30)
테세우스에 따르면, 둘째날, 크세르크세스는 협곡을 돌파하기 위해 또다른 50000명으 보냈으나 그들 또한 실패했다. 섬멸된 자들의 이야기는 왜 시체의 벽이 페르시아 진영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밖에 없었는지의 이유를 보여준다. 그 시체들을 타고 올라가고 나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살인기계 안으로 발을 들여놨다는 걸 깨달았지만 후방의 장교들은 그들이 후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크세르크세스는 마침내 돌격을 멈추고 완전히 당황한 채 그의 진형으로 철수했다. 그제서야 그는 좁은 장소에서의 스파르타군대와의 정면대결은 잘못된 접근이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리스군의 포위
전투 둘째날의 늦은 시간,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하는 도중, 황제는 뜻밖의 횡재를 만났다. 말리아지방에 사는 에피알테스라는 그리스의 배신자가 그에게 테르모필레 주변의 샛길을 가르쳐주고 협곡까지 페르시아군을 안내해준 것이다. 아피알테스는 포상에 눈이 멀어있었다. 이 행동으로 인해 에피알테스란 이름은 영원한 모욕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한 "악몽"을 뜻하며 그리스어로 "배신자"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크세르크세스는 히다르네스를 임모탈과 다른 군대와 함께 협곡으로 보냈으며 테시아스는 그가 이끈 군대의 수가 40000이라고 추정했다.
그 샛길은 페르시아진영의 북쪽에서 부터 아노파에아 산의 산등성이를 따라 협곡의 측면에 위치한 절벽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포키스로 향하는 하나의 샛길과 말리스만에 인접한 로크리스의 첫번째 마을인 Alpenus로 내려가는 다른 하나의 길로 갈라져 있었다.
레오니다스는 그 샛길을 지키게 하기 위해 1000명의 포키스지원병들을 언덕에 배치시켰다.
그들의 분노와 테르모필레를 지키겠다는 결단에도 불구하고 포키스인들은 큰 성과를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그곳에는 선발배치도, 보초도, 수색대도 없었다. 히다르네스가 거느린 임모탈의 접근에 대한 그들의 첫번째 경고는 전투의 셋째날 새벽, 참나무 잎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전부였다.
헤로도투스는 그들이 아무 경계태세도 갖추지 않음에 "매우 기뻐하며" 아직 잠들어 있는 그리스군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고 표현했다.
히다르네스는 그리스인들이 그제서야 급하게 무기를 갖추는 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그는 그들이 스파르타인들이라는 것에 겁을 먹었으나 에피알테스에 의해 교화되었다.돌격에 의해 미뤄지지 않기를 바라며 히다르네스는 승리로 이어지는 전법을 썼다.:그들을 향해 "화살의 비"를 쏘았던 것이다. 포키스인은 저항하기 위해 산꼭대기로 후퇴했다. 페르시아군은 Alpenus의 왼편으로 갈라졌다.
스파르타군과 테스피아군의 마지막 저항
새벽이 밝아오기 전, 레오니다스는 포키스인들이 지탱하지 못할 것을 깨닫고 새벽회의를 소집했다. 군사회의에서 그리스 국가들은 압도적인 페르시아군의 진군로에서 철군할 것인지를 두고 찬반론을 펼쳤다. 회의 후 많은 나라들은 철수를 택했다. 헤로도토스는 레오니다스 왕이 그에 앞서 철군을 지시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서술도 함께 소개했다. 스파르타군은 결사항전을 맹세했지만 테베군은 그들의 의사와는 달리 억류되어 남았다. 그러나 디아드로메스의 아들 데모필루스 장군이 이끄는 테스피아이에서 파병된 700명은 다른 그리스군과 함께 떠나기를 거부하고 스파르타군과 운명을 함께 하기로 했다.(이부분은 도저히 토나와서 내가 못하고 정헌이가 해석해주었음 완전땡큐!!)
명백하게, 스파르타인들은 그들의 서약에 복종하고 델파이의 신탁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페르시아의 진군을 지체시키고 그리스군의 후퇴할 시간을 벌기 위한 계산된 전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시시각각 페르시아군이 접근해오는 동안 저항하여 전투하기로 한 결정은 신탁에도 따르기 위함이였으나 전략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새벽에 크세르크세스는 헌주를 하였다. 그는 임모탈이 산을 내려올 충분한 시간을 준 후 진군을 시작하였다. 그리스군은 이번에는 협곡에서부터 좀 더 넓은 부분인 전방으로 페르시아군과 마주치기 위해 돌격해 나왔는데 이것은 그들이 가능한만큼 많은 페르시아군을 죽이기 위한 의도로 보여진다. 그들은 모든 창이 산산히 부서질 때까지 창으로 싸웠고 그 이후엔 단검인 xiphoi로 바꿨다. 헤로도투스는 이 투쟁에서 크세르크세스의 두 형제인 Abrocomes와 Hyperanthes가 죽었다고 전한다. 레오니다스 역시 이 전투에서 사망했다.
에피알데스와 임모탈이 뒤쪽에서부터 진군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스군은 후퇴하여 협곡 뒤쪽의 작은 언덕에서 저항을 시작하였다. 테베인들은 페르시아에 투항했으나 몇몇은 항복이 받아들여지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36) 살아남은 몇몇의 군사들이 그들의 단검으로 싸우는 동안 단검마저 없어진 병사들은 그들의 맨주먹과 이를 사용하여 싸웠다.
협곡의 부분을 헐어내면서 크세르크세스는 언덕을 둘러싼 채 마지막 그리스인이 죽을 때까지 화살을 퍼부으라고 명령했다.(37) 현대 고고학자들은 마지막 화살비의 증거들을 찾아냈다.(38)
......인간승리다 이건 완전...!
아예 프린트아웃해서 들고다니면서 해석했다. -_- 점심먹으면서도 읽고 수업시간 도 중에도 읽고...아니 도대체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해석이나 잘 했으면!!!...
그래도 이렇게 다 옮겨적고 나니 뿌듯하다..
이거 올리기 전에는 자지 않겠다며 오기로 버티다보니 벌써 새벽 2시...내일 회사는 어찌 가나..
근데 정말 내가 보면서도 어이없는 해석 너무 많다.ㅠㅠ;;
도와준 정헌 완전 고맙소..ㅠㅠ 저부분 완전 기절하는 줄 알았어..
이제 얼마 안남았다.....기 보다는 저 끝까지는 해석 못해! 안해!! 쭉 훑어보고 더 할 지 안할지 결정해야할 듯..... 여튼 나 해냈다구요!!! 기특해서라도, 안쓰러워서라도 한번씩 읽어주시고...얼척없는 번역은 가차없는 채찍질을!! 계속 이런 식의 역사적 사실을 들춰내자니 증말로 300이 얼마나 얼척없는지 알겠구만 ㄱ-; 추가:약간의 단어들과 오타를 고쳤음...좀 스무스하게 읽히라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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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하신 글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상기 글 해석하느라 고생하신거 같은데.. 수고하셨습니다.
번역을 처음 해보는 거라 많이 헤매었습니다. 아마 뜻이 이상한 것도 많을텐데..읽어주셔서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올때마다 오랜만이라 상당히 민망하네요.
우연하게 300이 관련된 교양수업 발표를 하게 됐는데 바로 여기가 생각나더라구요 ^^
페르시아군의 화살비가 나오는 문단에서 '호로도투스'와 다른 문단의 '헤로도투스'는 아마도 '헤로도토스'를 잘못쓰신 것 같아요. 발표 주제야 이 양반이거든요;
어쨌든 양질의 자료덕분에 많은 도움을 되었습니다~ 고마워요-